임종삼 오산학연구소 연구위원|
우리나라 고인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강화도의 고인돌, 고창군의 고인돌, 오산시 금암동의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그중에서 수도권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단연 오산시 위치한 금암동 고인돌 공원이다. 고인돌을 처음 보게 되는 학생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로 최적화된 장소다. 수도권 전철 1호선과 분당선, 신분당선을 이용하면 아주 편리하게 다녀올 수 있다.
고인돌이 존재하는 장소는 고대 문화의 발상지이다. 선사시대에도 오산시의 선인들은 한반도의 고인돌 문화를 이끌었다. 오산시 외삼미동에는 별자리를 새긴 탁자식 고인돌을 남겼고, 오산시 금암동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뚜렷한 개석식 고인돌을 남겼다.
경기도의 중심에 위치한 오산시는 한반도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충효의 역사와 과학 문화 예술에 빛나는 교육의 도시로 발전하였다. <삼국사기>, <오산학 연구>, <오산시사> 등을 참조하여 충•효•예•지의 전통을 이어가는 오산의 뿌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서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된 오산시 고인돌 유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금암동 고인돌 공원을 찾아오는 길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전철 1호선 신창행을 타면 서울역, 안양역, 수원역을 지나 병점역에 이른다. 또 왕십리에서 출발하는 분당선을 타면 분당역, 기흥역, 영통역을 지나 수원역에 연결된다.
오산시 금암동 고인돌 공원은 수원역에서 세류, 병점, 세마역을 지나 오산대역에 하차하면 된다. 오산대역 2번 출구 서쪽 300m 지점에는 경기도 물향기수목원이 위치한다. 물향기수목원을 답사하기에는 풀꽃이 왕성하게 자라는 봄, 여름, 가을이 좋다. 그러므로 겨울철에는 물향기수목원을 지나 고인돌 공원을 답사하는 것이 좋다. 오산대역에서 금암동 고인돌의 거리는 1.2km로 15분만 걸으면 된다. 오산대역에 대기하는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에 5분 거리로 가깝다.
2. 선사시대의 과학교육 자료
선사시대부터 오산시의 중심은 독산(禿山)이었다. 그리고 독산을 휘돌아 나가는 오산천과 황구지천이었다. 오산시의 진산 독산과 그 주변의 금암동, 양산동, 세교동, 지곶동, 가장동, 서동, 탑동이 그 중심이었다. 그 까닭은 독산을 감아 도는 오산천과 황구지천 주변이 수렵과 어렵, 농업을 하기에 매우 좋은 터전이기 때문이었다. 오산시 금암동과 외삼미동에 존재하는 고인돌 유적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오산시 금암동과 외삼미동에는 선사시대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곳에서 출토된 빗살무늬 토기 등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매우 신비로운 존재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부족장의 무덤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외삼미동에 존재하는 북방식(탁자식) 고인돌에는 16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어 특이하다. 금암동에 존재하는 남방식(덮개식) 고인돌에는 고인돌을 축조하던 과정이 뚜렷하여 특별하다.
우리 민족의 천문관과 천문학은 매우 독창적이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와 천문도, 신라의 첨성대, 고려 고분벽화의 별자리, 조선의 관상감과 천상열차분야지도로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인문분야는 물론 자연과학분야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천문학의 역사는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별자리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고고학, 천문학, 종교학 등 학제 간 공동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 남북한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과 고구려 고분을 보유한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3. 금암동의 개석식 고인돌


금암동에는 경기도 기념물 112호로 지정된 9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 외 고인돌로 추정하는 2개의 고인돌이 더 있다. 9개의 고인돌은 모두 굄돌이 없는 개석식이다.
금암동 고인돌군의 특징은 고인돌 모암(母巖)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바윗돌을 떼어 냈던 2개의 모암과 청동기나 철제기구로 구멍을 뚫은 수직형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인돌 축조 방식의 전기와 후기 연구 자료로 주목받는다.
금암동의 ‘개석식 고인돌’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인돌 축조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모암으로 불리는 할아버지 바위와 할머니 바위가 존재하고 모암에서 떼어 낸 고인돌이 고스란히 현장에 남아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굄돌이 없는 금암동 고인돌이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외삼미동의 탁자식 고인돌이 금암동의 개석식 고인돌보다 앞선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오산시 금암동과 외삼미동이 고대인의 삶의 터전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된다.오산천과 황구지천이 수렵과 어렵, 농업을 겸할 수 있는 위치하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의 선주민들은 움집과 빗살무늬 토기를 만들어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우리 고장 오산시에는 북방식 고인돌인 탁자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인 개석식 고인돌이 존재하여 선사시대의 자연과학과 석조건축기술을 선도하였다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4. 외삼미동의 탁자식(卓子式) 고인돌
금암동 고인돌을 둘러보고 난 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외삼미동 고인돌도 찾아보기를 권한다. 다시 오산대역으로 돌아와서 1호선을 타고 수원역 쪽으로 1정거장을 가면 된다. 세마역 2번 출구에서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1.2km만 걸어가면 된다.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에 5분 거리로 가깝다.
오산시 외삼미동에는 경기도 기념물 211호로 지정된 2기의 고인돌이 있다. 하나는 탁자식(卓子式) 고인돌이고 다른 하나는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이다. 통상 탁자식 고인돌을 북방식 고인돌로 부르고 개석식 고인돌을 남방식 고인돌로 부른다.
외삼미동의 북방형 고인돌과 금암동의 남방형 고인돌은 형태면에서 크게 다르다. 금암동 고인돌은 굄돌이 없는 것이지만, 외삼미동 고인돌은 굄돌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삼미동 고인돌에는 금암동 고인돌에 없는 별자리 성혈(알자리)이 또렷하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삼미동 탁자식 고인돌이 금암동 개석식 고인돌보다 앞선 시기의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를 소장한다. 서기 1,395년 권근(權近)이 제작한 조선시대의 천문도이자 고구려의 천문도를 본뜬 것이다. 가로 123㎝×세로 210㎝ 크기의 이 천문도에는 북두칠성 등 290개의 별자리에 1,469개의 별이 새겨져 있고, 적도와 북극, 은하수까지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단부에는 평양성이 함락될 때 강물에 던진 고구려 천문도 탁본을 토대로 제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천문도의 별자리를 수정 보완하여 만들었다는 기록이다. 그러므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의 천문도이자 7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천문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요 별자리는 28수(宿)이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의 적도를 따라 그 부근에 있는 별들을 28개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부른 이름이다.
각 구역에는 여러 개의 별자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을 수(宿)로 정했다. '수'는 '머무른다'의 의미로 '집'이라는 뜻이다. 각 수의 대표적인 별을 거성(距星)이라 하며 인접한 두 거성 사이의 거리를 수도(宿度)라 하는데 그 수도는 수마다 서로 다르다. 이것은 인위적인 등분이 아니라 적도 근처의 별자리를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8이란 숫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다. 이 숫자는 12개월과도 다르고 24절기와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유력한 설은 달(月)이 하늘을 운행하는 길인 백도(白道)를 따라 일주하는 데 약 27.32일이 걸리는 것에서 나왔다는 주장이다. 즉 달이 하늘을 기준으로 한 바퀴 도는데 약 28일 걸리며, 이때 달이 머무는 곳이 수(宿)가 된다.
28수는 편의상 7개씩 묶어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 분속시켰다. 동방7수(東方七宿)는 춘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각(角)을 시작으로 차례로 떠오르는 각(角)‧항(亢)·저(氐)·방(房)·심(心)·미(尾)·기(箕)의 별자리를 말한다.
북방7수는 하짓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두(斗)를 시작으로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실(室)·벽(壁)을 말한다.
서방7수는 추분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를 떠오르는 규(奎)를 시작으로 규(奎)‧루(婁)·위(胃)·묘(昴)·필(畢)·자(觜)·삼(參)의 별자리를 말한다.
남방7수는 동짓날 초저녁 동쪽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정(井)을 시작으로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의 별자리이다.
달의 운동을 기준으로 본다면 달은 각(角)에서 시작하여 계속 동쪽으로 움직여 약 28일 동안 진(軫)까지 이동하게 된다. 28수가 각에서 시작하는 이유는 북두칠성의 자루[柄]가 가리키는 방향을 이으면 바로 각(角)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고구려는 어떻게 이런 정밀한 천문도를 만들 수 있었을까? 학자들은 ‘대동강에 빠졌다는 천문도 원본을 찾지 못해 짐작하기 어렵지만, 고구려 고분의 별자리 그림을 보면 고구려 천문학의 높은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구려 벽화고분 95기 가운데 22기의 천장에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고구려 무용총의 경우 벽면에 고인의 영생을 상징하는 四神圖와 日月이 그려져 있다. 사신도는 북 玄武, 남 朱雀, 동 靑龍, 서 白虎의 그림이다. 또 천정에는 여름밤의 대표적인 남두육성을 비롯한 26수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고구려인의 독특한 천문사상을 나타낸다.


수년 전 일본에서 발굴된 ‘다카마스(高松塚)’ 천문도가 고구려인의 작품이라는 의견이 제기된 일이 있다. 7세기 고구려 고분 천장에 그려진 동쌍삼성, 서쌍삼성 자리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똑같고, 관측지점이 평양과 같은 북위 39~40도로 밝혀진 것이 근거였다. 또 벽화에 그려진 4명의 여인이 입은 저고리와 치마가 고구려 수산리 벽화의 여인이 입은 색동옷과 똑같은 것이 그 근거였다.
이 무덤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지만 벽화는 손상되지 않고 남았다. 일본은 이 무덤을 내시경으로 촬영하는 것으로만 발굴을 마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무덤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유물이 나올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평양 천문대에서 관측한 것으로 추정하는 또 다른 근거는 중국 순우천문도(順祐天文圖,1247년)에는 없는 별자리와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특징인 사신도(四神圖)가 그려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발달 된 고구려 천문학의 뿌리는 어디인가? 일단의 학자들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고인돌 유적에서 나온 갈돌판의 별자리로 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한다.
서울대학교 박창범, 서울교육대학 이용복 교수는 1978년 대청댐 수몰지역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아득이 마을’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된 돌판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돌판에 새겨진 65개의 성혈(구멍)이 북두칠성 주변 별자리임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대구시 동내동과 각산동 민가 마당에 있는 고인돌,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황석리에서 발견된 고인돌, 강화도 교동도 화개산 등에서도 이미 북두칠성 별자리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적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고조선 문명의 실체를 밝혀줄 연구 자료로 중요하다.
<청원 아득이 고인돌 유적에서 발굴된 별자리판>에서 박창범·이용복은 아득이 고인돌 유적에서 발견된 돌판(石版)에 새겨진 홈(구멍)이 별자리라고 보고하였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북극성 별자리에 관한 연구>’에서 김일권은 고구려 고분의 주요 별자리를 북두칠성, 북극삼성, 남두육성 등으로 보고하였다.
두 논문은 오산시 외삼미동의 탁자형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의 정체를 더욱 분명하게 밝혀주는 근거 자료이다. 이에 대한 자료는 <오산학 연구 3>에 실었다.


이렇게 볼 때 ‘오산시 외삼미동의 탁자식 고인돌’은 매우 소중한 문화재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별자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고인돌이며 우리 고장에 거주하던 선인들의 천문관을 볼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교육 자료이다.
그러므로 외삼미동의 탁자식 고인돌의 성혈은 고구려 천문도의 전 단계인 문화재로 등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될 때 오산시는 청동기시대의 별자리 하나를 고스란히 보유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우리나라 고인돌의 대표적인 고인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원고 ‘오산시 금암동 개석식 고인돌과 외삼미동 탁자식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 문양’에 대한 천문 관련 학계와 문화재 당국의 큰 관심을 기대한다.
오산시 고인돌 공원을 찾아오기가 어려운 분은 필자에게 연락 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