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우리 시대의 영웅이자 전설 - 영면에 들다

  • 등록 2024.07.24 15: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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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상록수, 늙은 군인의 노래 등
극단 학전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만들어
시대의 저항정신 대표

한민규 기자 |

딸내미가 어려서 좋아했던 노래가 김민기의 <작은 연못>이었다. 이 노래가 무엇이 좋았는지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을 자주 불렀다.

내가 처음 김민기를 알게 된 건 대학에 가서이다. 사월에는 4.19, 오월에는 5.18, 유월에는 6.29로 이어지는 뜨거운 함성 속에서 그가 만든 <아침이슬>, <상록수>, <가뭄>, <늙은 투사의 노래>(원래 ‘늙은 군인의 노래’였으나 시위현장에서 ‘군인’을 ‘투사’로 바꿔 불렀다) 등의 노래를 불렀다. 맨 처음엔 누가 만든 노래인줄도 모르고 집회현장에서,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민주열사의 영결식장에서 어깨동무하고 불렀고, 때로는 주점에서 친구들과 함께 목청껏 불렀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애국가> 다음으로 많이 불리는 국민의 노래가 되었다.

 

 

한류 콘텐츠가 세상을 물들이고 BTS가 세계를 정복하는 이 시대의 바탕에는 생각에 구속이 없고 표현의 자유로움이 깔려 있다. 엄혹한 독재의 시절, 생각의 자유마저 억압당하던 때에 그 억압과 폭정을 뚫고 사상의 자유와 존엄한 존재인 인간임을 잊지않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 가장 큰 영향력과 파급력을 가졌던 것이 김민기였다.

처음 <아침 이슬>이 나왔을 때 정부에서 건전가요로 지정했으나 <아침 이슬>이 집회 현장에서 불려진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이렇게 김민기의 노래는 그가 어떤 의도로 노래를 만들었느지는 상관없이 시대의 저항정신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고, 그로인해 그 또한 고초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끊임없이 시대와 그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가난했던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역사의 진보를 믿고 꾸준히 활동했다. 70년대 당시 의문사를 당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노래굿 <공장의 불꽃>을 테이프로 만들어 돌렸으며, 80년대에 대학 노래패 사람들과 만든 음반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이 음반에는 김민기가 만든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 <그루터기>, <갈 수 없는 고향>,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의 노래가 실려있다.

 

 

90년대엔 학전 소극장을 개관하고 극단 학전을 만들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무대에 올렸다. <지하철 1호선>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면밀히 탐구한 작품으로, 수많은 배우들이 이 작품을 거쳐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지하철 1호선>은 1994년 초연 이후 2023년 12월31일 4,257회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대한민국 뮤지컬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김민기 선생이 지난 7월 21일 영면에 들었다. 7~80년대 엄혹한 시절, 청춘의 가슴에 저항과 투쟁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앞에서도 끊임없는 역사의 진보를 낙관했던 사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위대한 노래를 만들어 시대의 영웅이자 전설이 된 사람.

 

김  민  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민규 기자 newsongg@kaka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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