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규 기자 |
광교신도시 개발로 빠르게 변화한 수원 광교지역. 이곳에 자리한 수원 광교박물관은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도 잊히지 말아야 할 지역의 역사와 인물, 문화를 보존하는 문화유산의 보루로서 빛을 발하고 있다. 2014년 개관한 광교박물관은 광교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과 자료를 기반으로, 광교와 수원 지역의 뿌리 깊은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광교박물관은 설립 이후 다양한 상설 및 기획전시, 교육 프로그램, 지역 문화 행사를 통해 시민들에게 친근한 역사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 개의 상설전시실로 만나는 광교와 수원의 역사
광교박물관 내에는 ▲광교역사실 ▲소강 민관식실 ▲사운 이종학실 등 총 3개의 상설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광교의 시간 위를 걷다 – 광교역사실
광교신도시의 빌딩 숲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 것일까? 광교역사실은 그 물음에 답하듯, 사라져간 마을과 기억들을 시간의 그물망에 조심스레 건져 올린다.
2000년대 후반, 광교신도시는 거대한 도시개발의 상징이었다. 고층 아파트와 호수공원, 광역교통망이 미래를 설계했지만, 그 땅 아래에는 오래된 기억들이 잠들어 있었다. 선사시대의 토기 파편, 청동기 유물, 고려·조선시대의 생활기록과 마을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발굴되며, 이곳이 단지 갑자기 생겨난 '신도시'가 아님을 증명했다.

대표 유물 중 하나는 세종대왕의 장인인 심온 선생의 묘표이다. 현재 박물관에는 실제 묘소에서 이전된 이 묘표가 소장되어 있으며, 원래 묘표가 있던 자리에는 보호를 위해 복제품이 놓여 있다. 광교역사실은 이 외에도 원천유원지의 사진 자료, 집성촌으로 형성된 광교 옛 마을 관련 유물 등 다양한 지역 역사 콘텐츠를 포괄한다.
전시관은 지역주민들의 삶을 반영한 생활사 중심의 콘텐츠와 함께, 광교라는 공간이 수원에서 어떤 의미를 가져왔는지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전시 외에도 ‘광교의 옛마을’, ‘원천유원지’ 등을 주제로 한 벽면 사진전, 틈새 전시도 지속되고 있다. 이는 박물관이 단순한 유물 보관소를 넘어, 지역민의 기억을 담아내는 기록 공간이자 해석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광교역사실은 아직도 진행 중인 ‘광교’라는 이름의 역사 기록에 관람객을 초대한다. 여기서 역사는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의 시선으로 새롭게 구성된다.
개인의 기억이 사회적 의미로 전환되는 공간 – 소강 민관식실

소강 민관식실은 대한민국 체육행정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자, 철저하게 자신의 인생을 기록으로 남긴 '기억의 수집가'이자 ‘현대사의 관찰자’인 민관식 선생(1918~2006)의 전시실이다.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서울대학교 농과대)를 거쳐, 정치인이자 교육자에서 체육행정가로 변신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문교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태릉선수촌 설립자 등의 타이틀 외에도, 민관식 선생은 당대 정치인들과 두루 교류하며 한국 체육 발전의 뼈대를 만들었다.

태능선수촌을 만들어 국가대표를 양성하는 등 체육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그는, 조오련 선수의 발탁에도 깊이 관여했던 인물이다.
민관식 선생이 남긴 유물들은 방대하고도 섬세하다. 국회 유인물, 여권, 각종 회의 자료, 축사 원고, 만찬 메뉴판, 올림픽 기념품, 사마란치 IOC 위원장과의 사진, 만평 원화까지 포함된다.

그는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하는, 자기애가 무척 강한 사람이었다.
전시실은 체육계 자료뿐 아니라,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한 인물의 삶으로 본 대한민국 현대사’이다.

그의 유물이 광교박물관에 자리 잡게 된 배경도 인상적이다. 부인 김영호 여사가 우연히 수원박물관을 방문해, 민관식 선생의 학창 시절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전시된 것을 보고 감동받아 기증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사적 기억이 공적 자산으로 전환되는 순간이었다.
민관식실은 단지 누군가의 업적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다. 기록을 통해 삶을 정리하고, 개인의 기억이 어떻게 사회적 의미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광교박물관은 체육 관련 자료 수집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역사전쟁의 선봉에서 – 사운 이종학실

수원 화성이 세계유산이 되기까지, 그 뒤에는 한 사람의 치열한 집념이 있었다.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은 기록으로 독도와 우리 역사를 지키려 역사의 전장에서 선봉에 선 사람이다.
이종학 선생은 수원군 우정면(현 화성시 우정읍) 출신의 고문헌 수집가이자 연구자였다. 독도, 임진왜란, 수원 화성, 금강산, 조선의 고문헌과 고지도, 한일관계사 등 수많은 주제를 평생에 걸쳐 수집하고 연구했다. ‘조선해’ 표기 지도, 일본판 징비록, 관습조사 보고서, 고서적 및 엽서 등 다방면의 유물을 통해 그는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사료수집과 연구를 실천했다.

그의 수집품은 단순한 자료 그 이상이었다. 그는 초대 독도박물관장으로 재직했고, 독도 문제나 이순신 연구에 있어 학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사료를 찾아내고 발표했다. 또 그동안 ‘수원성’이라고 불리던 ‘화성’에 제 이름을 찾아주었으며,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고서점 운영을 통해 고문헌 수집가와 학자 간 신뢰 관계를 구축했으며, 동시대 수집가였던 서인달 선생과의 교류는 고문헌 자료수집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종학실은 그의 철학을 담아 꾸며졌다. 부동산 매매 문서, 금강산 관련 고지도, 동해와 독도 관련 문헌 등으로 구성된 주제 전시는 그의 방대한 수집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그의 기증 유물은 임진왜란, 이순신, 독도, 간도, 금강산, 조선-일본 관련 문헌 등 방대한 주제를 아우른다.

광교박물관은 그의 수집물로 ▲<수상한 친절, 의도된 침략>(2019년 전시) ▲<조선부동산 움직이다>(2021년 전시) ▲<근대관광, 금강산을 열다>(2022년 전시) 등 주제를 확장한 다양한 기획전도 열었다.
이종학 선생이 직접 분류하고 보존한 유물들은 지금도 학계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후배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아카이브화되어 있다. 특히 일본이 조선을 조사하며 남긴 ‘관습조사 보고서’, 독도 관련 고지도, 조선해 표기 문헌 등은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연구자들에게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그의 유산은 단지 과거의 자료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기록된 역사 그 자체이다.
향후 광교박물관은 그가 남긴 자료를 활용한 새로운 기획전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광교박물관은 어린이들이 전시 주제와 관련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어린이체험실을 운영하고 있다. <독도야 안녕>에서는 사운 이종학실과 연계해 독도와 관련된 체험을 할 수 있고, <올림픽에서 놀자>에서는 소강 민관식실의 주제 중 하나인 올림픽에 대해 이해할 수 있으며, <나도 고고학자>는 광교 역사문화실을 토대로 발굴체험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