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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 큰 어른 신경림 시인 별세

한평생 현실과 역사에 충실했던 시인
서정적인 민중시인

한민규 기자 |

신경림 시인이 지난 5월22일 별세했다. 한평생 힘없고 밑바닥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시를 쓰던 시인이다.

 

대학 다닐 때 신경림 시인을 처음 접했다. 80년대 그때 시집 가격이 이천원인가 했다. 가난한 대학생들의 생일선물로 시집이 제격이었다. 생일선물로 시집을 받고 강의시간 동안 다 읽고 친구들과 막걸리집으로 달려갔다. 막걸리가 가격도 제일 싸고, 배도 부르고, 술도 취하고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에는 맞춤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우리는 독재를 타도해야 했고, 호헌도 철폐해야 했으며 푸르른 청춘의 뜨거움 또한 토해내야했다.

 

 

그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이 신경림 시인의 시집 『농무』였다.

시집 『농무』는 1973년 창작과비평에서 펴냈고, 1975년에 창비시선 1호로 다시 발행되었다. 시집 『농무』에 실린 시중에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시가 <산 1번지>이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비극과 절망과 불행을 시 한편에 담아냈다. 시를 읽고 나면 매캐한 연기 내음과 아무런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에 초점잃은 눈망울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신경림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시에 대해 “내가 다시 시를 쓰고 문학을 하게 될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그런 기회가 생긴다면 옛날 같은 그런, 사는 것과 동떨어지고 현실하고 동떨어진 문학, 그런 말장난은 하지 말고 진짜 우리 사회 가장 밑바닥에서 고생하면서 사는 사람들, 우리 현실이나 역사의 피해자들, 이런 사람들의 아픔까지 내 아픔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라고 밝혔었다.

 

세상과 시대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시인은 항시 역사를 서늘한 시선으로 응시하며 서정적인 시어로 자리를 지켰다.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다시 시집 『농무』를 보게 되었다. <산1번지>를 찾아 읽었다.

30여년 전과 다른 느낌이지만 지금도 시의 힘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가 세상에 나온 지 50년이 넘게 지났다. 세월이 지나도 시가 지닌 감동과 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삼가 시인의 명복을 빈다.

 

 

산 1번지

 

 

해가 지기 전에 산1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 얹는다.

 

해가 지면 산1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

 

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

 

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붙어 흐늘댄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1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 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 온

 

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그리하여 산1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쳐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